도서관 예약이 n번째까지 되어 있는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 특이한 제목에 끌렸지만 예약하고 수령하는 과정이 귀찮아 미뤄두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드디어 책을 빌렸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간단한 책 소개를 찾아보는 편이다. 책의 소재를 미리 알게 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찾아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교보문고 책 소개란이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사랑 후 남겨진 것들에 관한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 혹은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최진영은 퇴색하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아름다운 문장과 감성적이며 애절한 감수성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과 냉정한 죽음에 대해 세련된 감성과 탁월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나는 이 소개 글에서 두 가지에 주목했다.
첫째는 이 책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제목만 봐서는 굉장히 심오하고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할 것처럼 보였는데, '구'가 사실 사람 이름이고, 사랑을 다룬다는 것이 살짝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를 증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두 번째는 단연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곧바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떠올랐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는 실제로 췌장을 먹지는 않는다. 그런데 과연 '구의 증명'의 '먹는다'는 실제 식인을 말하는 것일까? 이 부분은 나에게 상당히 중요했다. 공포영화는 물론 폭력적인 묘사가 많거나 섬뜩한 분위기의 소설은 절대 못 보는 사람으로서 식인 소재는 곤란했기 때문이다.
여러 후기를 찾아보니 실제로 식인하는 것이 맞았고, 그래서 호불호가 굉장히 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식인에 대한 묘사보다는 죽기 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는 말에 나는 그냥 읽어 보기로 했다.
책은 '구(남자)'가 죽으면서부터 시작한다. 죽은 '구'를 '담(여자)'이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가서 먹는다. 그 과정에서 '담'은 '구'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죽은 '구'도 '담'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즉 현재 시점('구'를 먹는 '담')과 과거 회상이 '구'와 '담'의 관점에서 교차되며 이어지는 것이다. 서술자가 바뀔 때마다 글의 위쪽에 동그라미로 서술자를 표시되어 있다. 까만 동그라미는 '구', 하얀 동그라미는 '담'의 시점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상실'과 '애도'라고 할 수 있다.
'상실'은 때때로 찾아온다. 상대의 죽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의한 상실이거나, 관계의 변화에 따른 상실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애도'를 한다. 잃어버린 이와의 첫 만남부터 마지막 이별까지 그 모든 과정을 되새긴다. 추억을 되돌아본다.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을 꺼내놓고 하나하나 살피고 다시 넣어놓는다. 그런 다음 작별 인사를 한다.
그러나 '담'은 '구'를 보내줄 수 없었나 보다. 그와의 모든 추억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모든 기억을 삼켜야 했다. 그래서 '구'를 먹었다. '구'가 온전히 자신의 일부가 되게 해야만 했던 것이다.
둘의 사랑은 흔한 연인들끼리의 사랑보다는 더 큰 무언가였다. 오랜 시간 동안 둘은 같이 성장하면서 서로가 닮아갔다. 그랬기 때문에 '구'의 죽음은 '담'에게 자신의 커다란 일부를 잃는 경험이었다. 결국 '담'이 '구'를 먹는 행위는 그를 향한 애도이자, 자신의 일부를 되찾으려는 처절한 노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식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현재 '담'의 모습이 나오면서 '담'이 '구'를 먹는 중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담'이 '구'의 손을 먹으면서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식이다. 그런 장면은 아무리 '담'에게 몰입하려고 애써도 기괴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요소들을 모두 무시하고 둘의 사랑에 몰입할 자신이 있는 독자라면 추천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소재의 자극성이 주제를 압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실과 애도에 관한 소설을 읽고 싶은 것이라면 다른 책을 읽는 것을 권해본다.
*대표이미지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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