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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영화 [굿바이 싱글(2016)] (스포 ○)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

by 책읽는오제 2025. 1. 27.
 
굿바이 싱글
 
 <소개(네이버 영화)>
대한민국 대표 독거스타의 임신 스캔들! 이번엔 제대로 사고쳤다! 온갖 찌라시와 스캔들의 주인공인 톱스타 ‘주연’(김혜수) 그러나 점차 내려가는 인기와 남자친구의 공개적 배신에 충격을 받고, 영원한 내 편을 만들기 위해 대책 없는 계획에 돌입하게 되는데! 대표 독거스타의 임신 발표는 전국민 스캔들로 일이 커지고, ‘주연’(김혜수)의 불알친구이자 스타일리스트인 ‘평구’(마동석)와 소속사 식구들이 안절부절하며 뒷수습에 동분서주 하는데… 통제불능 여배우! 그녀의 무모한 계획은 계속 될까?!

<인물(배우)>
주연(김혜수): 톱스타 여배우
평구(마동석): 주연의 스타일리스트 겸 매니저
단지(김현수): 중학교 3학년 미혼모
김대표(김용건): 주연의 소속사 사장
상미(서현진): 평구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
지훈(곽시양): 주연의 전 남자친구

 


김혜수, 마동석, 서현진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다. 임신을 소재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코믹하게 풀어냈다. 영화 리뷰를 보면, 대부분 김혜수의 연기와 마동석과의 케미가 좋았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영화 내용에 관해서는 재밌었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볼만했다는 의견이 주류다.
 
나의 감상은 조금 다르다.
 



우선, 주연(김혜수)이 너무 싫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너무 진상인 것을 싫어하는 편인데, 주연은 너무 이기적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친다. 별로 미안해하는 구석도 없다. 영화 리뷰를 보면, 다들 주연을 연기한 김혜수 덕분에 주연이 너무 밉상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하던데, 어쩌면 내가 포용력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연이 어떤 짓을 저지르든 간에 주연을 지지하는 주변인들의 행동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영화 내에서 아무도 주연의 막무가내와 변덕을 제지하지 않는다. 김대표(김용건)는 죽은 친구가 부탁한 아이라서, 평구(마동석)는 소꿉친구라서 등 나름의 이유는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납득은 가지 않는다. 그들이 대체 주연을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육아도 그렇게 하면 큰일난다.

그래서 나는 후반부에 상미(서현진)가 주연(김혜수)에게 따지는 장면이 너무 좋았다. 정말 제대로 된 사이다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장면조차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상미(서현진): 언니.

주연(김혜수): 왜? 내가 뭐 또 잘못했어? 내가 그동안 번 돈 탈탈 털어서 다 막았고. 아, 뭐 그렇게 다들 죄인 보듯이들 그래?

상미(서현진):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무슨 잘못이에요?

주연(김혜수): 뭐?

상미(서현진): 이게 벌 세워 놓는 거지 뭐예요?

평구(마동석): 아이고, 상미야, 왜 그래.

상미(서현진): 그리고 언니는, 뭘 그렇게 잘해서 이 사람들에게 큰소리예요? 언니, 그 변덕 때문에 벌여놓은 일, 다 이 사람들이 무릎 꿇어가면서 수습했어요.

주연(김혜수): 아, 그래, 미안해. 맨날 병신같이 사람들에게 당하고 다녀서 미안하고 고마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비 오는 날 아침부터 장 봐 가지고 저 뜨거운 불 앞에서 실컷 요리해 가지고 대접하는 거 아니야.

상미(서현진): 누가 이거 먹고 싶대요? 언니, 언니는 이게 베푸는 거라고 생각하죠? 자기 기분 좋을 때는 밖에 나가서 젊은 애들하고 비싼 레스토랑 다니고, 클럽 다니다가 뭔 일 터지면 집에 혼자 있기 싫으니까 식사 대접한답시고 이렇게 불러다가 먹이고. 그러면서 맨날 내 편 없다, 내 편 없다. 언니는, 진짜 누구 편 돼본 적 있어요?

주연(김혜수): 먹기 싫으면 나가. 아, 그렇게 오기 싫으면 안 왔으면 됐잖아? 나 분명히 얘기하는데, 나 여기까지 억지로 오라고 한 적 없다? 가고 싶으면 가.

(차례로 나감)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현실감각이 있는 인물이 상미(서현진)인 것 같다.


주연(김혜수)과 단지(김현수)의 계약은 또 어떤가. 물론 영화적 허용이란 것이 있으니 현실적인 잣대로 계약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계약 자체의 실효성이나 불법적 측면이 아니다. 임신 계약을 어른인 주연이 먼저 제안하고 단지를 설득했다는 점과 계약이 너무 주연 위주였다는 점이다.

단지는 원래 낙태를 생각했다. 그런데 주연은 낙태를 생각하는 단지에게 아이가 불쌍하지 않느냐고 했다. 어린 아이의 죄책감을 자극해서 계약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만약 단지가 먼저 계약을 제안했다면 납득이 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아이와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주연에게 아이를 보내는 단지의 선택을 응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연이 계약을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다 큰 어른이 어린 학생을 이용해먹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영화가 나온 2016년은 낙태죄가 위헌 판결을 받기 전이다. 그 부분이 어째서 영화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불법이라서 출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을 강조했다면 개연성에 도움이 되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둘 사이의 계약은 철저하게 주연 위주였다. 계약상 단지에게는 금전적 보상 이상의 것이 없었다. 단지가 주연과 계약한 이유는 아이를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보다 주연에게 보내는 것이 나아보여서였다. 그런데 막상 주연이 '유명 배우'라는 사실 외에는 주연에게 아이를 보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뒷받침할 그 무엇도 계약에 없었다. 주연이 아이의 돌봄과 교육에 신경을 쓸 것을 약속하는 내용도 없고, 출산 이후에 단지가 아이를 확인할 방법도 없았다. 주연이 연예인이니 뉴스에서 소식을 접하는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한 입양 부모와 비교했을 때 변덕이 심한 주연이 가진 부모로서의 장점은 연예인이고 돈이 많다는 것뿐이었다.


주연(김혜수): 그런데요, 얘 이렇게 만든 애는 국가대표로 미국 갔어요. 근데 왜 얘는, 근데 왜 얘는 이런 대회 하나도 못 나가게 하는데! 얘는 뭐, 얘 앞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란 거예요? 너무 부끄러운데, 진짜 다 포기하고 싶은데, 너무 힘들게 용기 내서 여기까지 온 거 거든요? 한 번만, 얘한테도 한 번만 기회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은 주연(김혜수)이 단지(김현수)의 대회장 출입을 막는 학부모들과 학교 측에 따지는 장면이다. 물론 대사 자체는 좋다. 세상에 여자친구를 임신시켜 놓고 나몰라라 해놓고 잘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책임을 떠앉고 살아가는 미혼모들에게 사람들의 시선은 얼마나 냉혹한가. 꼭 미혼모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있는 여성을 대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태도는 문제가 많다.

다만, 나는 이 장면이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주연도 단지에게 마냥 좋은 어른은 아니었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주연이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비록 거짓 임신이더라도 주연은 미혼모의 이미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물론 여기에는 전남자친구의 바람 등의 맥락이 추가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어쨌거나 언론과 대중은 미혼모가 된 주연에게 따뜻했다. 그래서 주연이 하는 말들은 당사자성을 띄지 못했다.

또한, 이 영화의 본질이 아무래도 코믹이다 보니,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다. 영화 중간중간에 단지를 향한 혐오적인 시선들을 충분히 보여주지 읺았기 때문에 주연의 대사는 다소 뜬금없어 보인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에 주연의 대사가 납득은 가겠지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실질적인 가해자인 단지의 전 남자친구와 언니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불이익을 주지 못한 채로 하는 말이라,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찝찝하다.


영화의 결말에서 주연(김혜수)은 단지(김현수)의 보호자가 되고, 단지의 낳은 아이의 할머니가 된다. 일종의 대안가족이다. 최선의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지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결말이고, 주연이 사실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이기도 하다.

단지는 아이를 포기하고, 주연은 아이를 가짐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획득하려 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그 바램은 좌절된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해졌으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