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재수생활로 잃어버린, 이제는 고작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나의 스무 살이 아쉬웠다. 남들은 얼마나 찬란한 스무 살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논조의 말들만 했다. 내가 너무 부러워하지 말기를 바라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 실제로 그저 그런 생활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인터넷을 찾아보자니 그것도 내가 원하는 형태의 정보가 아니었다. 인스타든, 트위터든 간에 인터넷상의 '스무 살'은 너무 파편화되고 왜곡된 정보값들의 집합일 뿐이었다. 왜곡의 방향은 제각각이었으나 어쩐지 모두가 어떠한 콘셉트에 들어맞는 이미지만을 선별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평범하고 진솔한 한 인간의 스무 살 기록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스무 살에 했던 생각들, 고민들, 겪었던 변화들을 나에게 들려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들으면서 '아,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겠구나'하고 안심하는 것까지가 나의 무의식적 바람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동기를 가지고 나는 도서관 사이트에 '스무 살'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여러 가지 책이 검색되었지만, 가장 눈에 띈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스무 살의 원점>. 원점이란 "시작이 되는 출발점. 또는 근본이 되는 본래의 점."이라고 사전에 나와있다. 스무 살은 그 자체로 원점이 아닌가. 인생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 시기가 스무 살일 것이니, 인생 전체로 봤을 때, 스무 살을 인생의 원점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런데 스무 살'의' 원점인 이유는 무엇일까. 스무 살에게 무엇이 원점이라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책을 펼쳤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작가 소개를 먼저 봤다. 그런데, 작가가 스무 살에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녀가 쓴 일기를 펴낸 것이라고. 이런, 나는 이런 이야기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작가가 무슨 이유로 스무 살에 자살했을지가 궁금했다. 나에게 '스무 살'의 이미지는 당연하게도 자살 같은 것과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3년, 그리고 재수 1년을 스무 살, 그리고 대학에 갈 날을 상상하면서 버텼다. 불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정한 '자기 전에 할 긍정적인 생각 목록'에는 늘 스무 살이 된 이후의 일들이 있었고, 죽지 않기 위해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억지로 적을 때도 그 어떤 것보다 '대학교 한 번 안 가보고 죽는 것은 억울하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간절했던 스무 살이다. 그런데 그런 스무 살에 이 사람은 왜 죽었을까. 내게는 터널의 끝이자 가장 환한 빛으로 보였던 스무 살이 그녀에게는 왜 가장 어두운 끝이었을까.
일기는 1969년 1월 2일에 시작해서 6월 22일에 끝난다. 다카노 에쓰코는 6월 24일에 선로에 뛰어들어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녀는 왜 자살했을까?
1) 학생운동을 하면서 느낀 무력감, 외로움
2) 사랑과 이별, 실연
3) 가족과의 절연
4) 알코올중독과 기타 정신과적 문제
'1)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4)가 파생되었고, 2)와 3)으로 지지기반마저 없어지자 자살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학생운동은 다카노 에쓰코의 일기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69년의 일본 대학교에서 일어난 운동이기에 사실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각주로 여러 용어와 명칭이 해설되어 있으나, 각주를 열심히 보면서 읽어도 실제로 일어난 학생운동의 흐름을 다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일본 학생운동 역사를 따로 공부까지 해가며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사실 에쓰코의 학생운동 정신에 공감하기는 어려운 지점들이 꽤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특정 사건(미일 안보조약 등)에 대한 입장차가 있었고, 1969년의 대한민국이 겪었던 어려움과 비교하면 에쓰코의 학생운동은 다소 한가해 보이기도 했다.) 에쓰코의 심리를 제대로 따라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읽었다.
에쓰코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있는 대목들만 모아 정리해서 인용해 보았다.
1.2.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내가 너무 미숙한지도 모른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 물정을 안다'라는 말에는 체제에 순응하며 뻔뻔하게 살아간다는 의미가 어느 한쪽에 존재한다. (중략)
나는 길들여지는 인간이 아니라 창조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 '다카노 에쓰코'가 되고 싶다.
1.10.
도쿄대 기동대 투입 (중략)
나 자신을 이끌어 나갈 신념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에 초조하다. 지금은 어떤 방향도 잡지 못한 채 어둠 속을 더듬더듬 헤매고 있다.
괴롭다. 하지만 조급해하는 건 위험하다. 문제의식을 조금 더 폭넓게 갖기 위해 활자를 읽어야 한다. (중략)
학생 한 명 한 명 사이의 간극이 엄청나다.
1.15.
'혼자라는 것', '미숙하다는 것' 이것이 내 스무 살의 원점이다.
1.17.
그들은 현실 안에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나의 역사를 가지지 못했다.
논 섹트(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관심파로 완전히 갈아타면서 격렬한 소용돌이를 앞에 두고 주저하고 있다. (중략)
최근 들어 그동안의 내가 연기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단의 요청이 예전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 역할이 절대적이지 않게 되면서 연기자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연기자는 두려워졌다. 집단의 요청이 절대적인 것이 아닌 이상, 연기자는 자신만의 역할을 해야 하고 심지어 결정도 혼자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스무 살을 맞아 창조하는 인간이 되리라 결심한 에쓰코는 당시 최고조에 이른 학생운동에 대해 이전과는 달리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여러 입장들이 서로 엇갈리고, 정답으로 받아들일 의견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혼란은 커진다.
1.20.
경찰이라는 국가권력 - 폭력을 이용해 '분쟁'을 수습하려고 하는 대학 측은 피해자가 아니라 분명한 가해자, 운동의 탄압자다. 나는 학생들이 기물을 파손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보다 더한 폭력이 있다는 걸 느꼈고, 사태는 이제 이도저도 못하는 위기에 빠진 것 같다.
1.23.
그리고 생각한 건 5자회의나 연구실 회의 등에 참석해서 내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선 행동에 옮겨보자. 나는 뭔가를 봤으면서도 별일 아니라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믿어버리는 안 좋은 버릇이 있으니까.
2.1.
'언제까지 방관자로 있을 수만은 없어.' 이 말을 다시 할 수밖에. 그러고 보니 항상 이렇게 말했었지. 그래도 이번만큼은! 방관자는 용서할 수 없다. 무엇이든 행동하는 거다. (중략)
그런데 어렴풋이 그 세계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그 세계의 정체를 파헤쳐 언젠가 투쟁을 하겠지.
투쟁을 계속 목격하면서 에쓰코는 대학과 정부 측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2.6.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뺨을 철썩 때렸다. 가슴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최근 이삼일 동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석간신문을 읽고, 잡지를 읽고, 소설을 읽고,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해봐야 소용없는 것 같다. '절망'이라는 것을 들여다보고 온 느낌이다. '혼자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자살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게 그나마 제일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2.11.
• 청춘—도끼로 잘라낸 나무껍질에 튀는 붉은 핏방울, 언뜻 평온해 보이는 이 단교 자리에도 타협을 용납하지 않고, 자신을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청춘이 있다. (중략)
나는 말하자면 '심정적으로 전공투파인 가짜 학생'인 것이다. (중략)
나의 적이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적은 견고한 괴물이다. 초조함은 금물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갈고닦아야 한다.
2.12.
나는 요즘 내가 혼자구나 하고 절실히 느낀다.
공부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절망을 느끼고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과 의견이 다 조금씩 다른 사람들 뿐이다. 그래서 외롭다.
2.15.
모순은 항상 내부에 있기 마련이므로 자기 안에 흐르는 것과 동일한 것을 외부에서도 발견했을 때 사람은 외부를 향해 분노하게 되어 있다.
개별 자아의식이 타자를 물화한다. 또 하나의 무시무시한 지배형태.
2.20.
나는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자유로워지고자 하면 할수록 체제의 모순과 부딪치고 체제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체제의 모순은 자기모순으로 나타나므로 자기모순을 끝까지 파고들어 그 안의 것을 부정하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내면에 바리케이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중략)
나는 눈앞의 바리케이드를 보면서 '싸우자!' 하고 생각했다. 그 바리케이드는 국가권력의 부정, 내가 가진 부르주아 근성의 부정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2.24.
나에게는 '살아야 한다'는 충동, 고양되어 의식화된 마음이라는 것이 없다. 스무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생명의 충만함이라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느껴본 적이 없다.
3.27.
생활에서 아르바이트의 비중이 너무 높다.
가짜— 가짜— 가짜— 말고 진짜로 확실한 것을 손에 쥐고 싶다. (중략)
나는 겁쟁이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3.31.
요즘 일주일 동안 매일 밤 술을 마시는데, 왜 이렇게 마시는 걸까? 외로워서 마셨겠지. 취하면 쌓인 감정이 씻겨 내려가 답답함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져서일까? 나는 약하다. 혼자서는 너무 외롭다. 그래서 마신다.
4.4.
스즈키는 자기가 혼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쓸쓸한 뒷모습에 끌린 것이다.
4.9.
청춘을 잃으면 인간은 죽는다. 질질 끌려가며 타성에 젖어 살 필요는 없다. 서른이 되면 자살을 고민해 봐야겠어. 그런데 앞으로 십 년 동안 살아봐야 뭐가 될까? 지금처럼 아무 자극도 열정도 없는 상태에서 산다 한들 뭐가 될까?
체제의 모순을 찾기에 앞서 에쓰코는 자기 자신의 모순을 먼저 찾는다. 사색은 길고, 외롭고, 고통스럽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사랑에 실패하기도 한다. 결론은 외로움이다.
4.10.
하지만 오자와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공부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손쉽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인이 되고 싶다면 시를 읽어라, 거리로 나가라, 산으로 가라—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4.24.
나에게는 진리가, 정의가, 사랑이 있다. 나는 세계의 인민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 국가와의 투쟁에 임할 것이다.
4.25.
응석은 그만 부리자, 고독한가! 고독은 즐거운 거야.
이제 시위하러 가자. 국가권력과 대결하지 않으면 인간은 기계가 되어버린다.
4.28.
구호를 외친다. 소리 지르는 게 유일한 무기.
4.29.
사람들은 자주 내가 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나야말로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을 증오하고 무엇보다도 정의를 사랑하는 다정한 사람이라고요. 지금 이 사회가 편견과 부정이 넘치는 비정상적인 세계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봐도 이렇다 할 게 없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편이 낫습니다. 말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말에 속박되는 것은 싫습니다. 성실하지 못한 말만 내뱉는 것도 싫습니다. 다만, 침묵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왜 다들 살아 있는 건지 신기합니다. 다들 그렇게 강한 걸까요? 나만 이렇게 약한 걸까요? 하지만 자살하는 것은 결국 패배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죽은 다음에 담배 한 대 피우고 싶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국가권력이라는 존재를 알아버린 건 불행한 일일까요? 행복한 일일까요? 어쨌든 지금은 진흙탕 속으로 더 깊이 전전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4.30.
'실천'만이 비판적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만을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5.19.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후퇴는 용납할 수 없다. 청심관으로 가서 전진할 것.
등록금을 납부해 스스로를 상품으로 파는 행위에 대한 거부. 개강이라는 형태의 구식 질서유지 타도. 리쓰메이칸 히로코지에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낼 것. 나의 첫 무장투쟁이다.
5.28.
나는 어째서 19일 전학 바리케이드 투쟁에 참여했는가? 대학생을 상품으로만 보며 관리하고, 그런 풍토에 대한 투쟁을 말살하려는 대학당국에 대한 투쟁이었다. 말하자면 12월 이후 대학의 교육이념에 관한 우리의 문제제기를 탄압·은폐하고, 학교 측이 개강이라는 구식 질서유지를 시도한 데 대한 대학해체 투쟁이었다. (중략)
대학의 존재, 대학에서의 학문의 존재는, 자본의 논리로 점철되어 있다. 나는 그런 대학을, 학문을, 교육을, '어쩌다 보니 대학생이 된 것'을 부정하며, 진정한 대학생을, 그야말로 피로 얼룩진 투쟁 속에서 영속적으로 추구해 나갈 것이다. 대학은 반체제의 존재여야만 한다.
결국 에쓰코는 행동하기로 결심하고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직장에서의 파업에도 참여하고 노동자들과도 연대한다.
5.30.
지금은 파괴해야 할 것의 압도적인 크기와 스스로의 미약함에 그저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명백한 것은 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있으며 모순과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중략) 어떻게 해야 인간으로서의 나라는 존재를 나 자신의 것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 방향은 지배자와의 투쟁, 독점과의 투쟁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내 존재의 핵심은 무엇일까?
오늘 도쿄에 다녀온다. 언니와 이야기하고, 가족과의 연을 끊기 위해서.
6.1.
항상 스스로의 모순을 논리화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나의 모든 감각, 감성, 감정이 잠깐이라도 정지, 휴식을 원하면 그것은 퇴보로 이어진다.
분노와 증오를 드러내며 항의의 의미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만큼 몰주체적인 자만이 없다. 자살은 사람들에게 패배라는 단 한 마디로 전해질뿐이다.
6.7.
살아 있다는 것, 투쟁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들을 논리화해야 하는데 겨우 60페이지밖에 안 되는 책을 읽고는 던져 버리고 싶어진다. 나카무라 씨와는 진작에 헤어졌는데 그 환영이 아직 따라다닌다.
6.9.
마르크스주의의 '마' 자도 모른다고 해서, 제국주의 경제구조를 모른다고 해서, 현재의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투쟁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간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다. 자유를 손에 넣기 위한 투쟁이다.
6.12.
현대사회에 자유가 존재할까? 집회, 결사, 신앙, 표현의 자유를 일본국 헌법이 인정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아넘김으로써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은 노동을 통해 생명의 충만함을 느끼기는커녕 그저 소외되고 있을 뿐이다.
6.15.
스스로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게 나에게는 결핍되어 있는 건 아닌가?
6.22.
이 노트에 일기를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삶에 대해 아직 미련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살아가기로 결정했을 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큼은 말할 수 있습니다. (중략)
...
고요히 잠들어야지
다만 피리를 깊은 호수 바닥에 내려놓고 (완)
망설임을 그만두고 투쟁에 참여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무력감이었다. 분파끼리의 다툼, 정부의 진압 속에서 절망은 커졌다. 와중에 이별을 겪고도 스스로를 계속 몰아세우면서 삶에 미련을 버린다.
결국 6월 24일 에쓰코는 자살한다.
나는 일주일 전 이 책을 읽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탄핵이 옳은 일이라는 것에는 확신이 있었지만 정치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망설이게 했었다. 그런데 에쓰코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의 어떤 지식의 부족함이 투쟁을 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쓰코는 결국 "모른다고 해서 현재의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 또한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로 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 14일 여의도에 있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나처럼 정치를 아직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에 모인 사람들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제각각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한 악을 끌어내리기 위해 하나로 모였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결실을 얻었다.
우리의 행동이 끝까지 의미를 잃지 않기를, 우리가 결국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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