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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학

책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_하야마 아마리] |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든 이들에게

by 책읽는오제 2024. 11. 18.

 

'1년, 내게 주어진 날들은 앞으로 1년이야'

지금 나에게는 '죽지 못해 맞이하게 된 시간'밖에 없다.
나는 지금부터의 시간을 '남아 있는 목숨'이라 부를 것이다.

그날부터 내 인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p.46

 
스물아홉 생일, 혼자 초라하게 생일을 맞이한 '나'(하야마 아마리)는 우울과 절망을 느낀다. 자살을 결심했으나 무서워서 실행하지 못하고 낙심한 상태에서 TV를 켠다. 마침 TV에서는 라스베이거스의 모습이 송출된다. 그 화려한 이미지에 엄청난 끌림을 느낀 '나'는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돈을 따겠다는 목표를 가진다. 그 목표를 이루고 죽으리라는 결심을 한 '나'는 1년간의 시한부 인생을 스스로 선고한다.

이 책은 그 1년간의 기록과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그린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로, 저자인 '하야마 아마리'(가명: '아마리' = 여분·나머지, 즉 남은 시한부 인생을 뜻함)의 경험담이다. 실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적이다 보니, 몰입도가 정말 대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목표에 몰입한 채 1년을 살아가는 '아마리'의 모습에서는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아마리'가 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지만,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아마리'의 목표에 대한 몰입은 독자인 나조차 그녀의 인생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반짝 에디션)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올해 4월이다. 그때는 한창 수능을 향해 열심히 달려갈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수능이 끝난 11월이다. 불과 7개월의 기간이지만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이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다. 따라서 4월의 감상을 그대로 복붙 하기에는 지금의 나를 속이는 것 같아 책 읽을 당시인 4월(녹색) 현재 11월(회색)의 감상을 병기하겠다.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공부만' 잘했던 사람이 꽤 많다.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도 모른 채 고속 열차처럼 학창 시절을 내달리다가 어느 날 '툭' 하고 세상에 내던져진 그런 사람들 말이다. 얼마나 황당한지 모른다. 학교에서야 정말 잘 나갔지만 사회는 공부와는 전혀 다른 것들로 굴러가고 있지 않은가?
p.28

 
이 구절을 읽자마자 '나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거겠네'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잘한다고 스스로 알고 또 남들에게 인정받은 건 '공부'다. 그리고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고등학교까지 밖에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학벌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잘한다'라는 사실은 성적 그 이상의 혜택을 가져다준다. 반에서 꾸준히 1, 2등을 하는 정도, 혹은 그 이상이라면 특히 그렇다.
우선, 인간관계가 쉽다. '우등생' 이미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커버해 주기 때문이다. 특별히 모난 성격이 아니라면, 그리고 약간의 겸손과 최소한의 사회성만 갖추고 있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기가 힘들다. 절친을 만드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나쁘지 않은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노력만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무언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공부 외의 것을 열심히 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다른 취미활동이나 대외활동도 열심히 하는 능력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많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사회성이나 기타 능력들을 기르거나, 다른 것들에 열정을 가지고 해 보려는 의지가 없었다. 제대로 꿈을 꿔본 적도 없었다. 이런 것들이 공부 때문이라는 것은 핑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그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위로가 됐다.

현재, 나는 재수를 위해 학원에서 공부하는 처지다. '공부'라는 재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라고나 할까. 재수를 결심했을 때 가장 걸렸던 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나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절망감보다도, 1년을 뒤처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부 빼고는 남들에 비해 부족하다. 1년을 또 공부만 한다면 더 부족해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전과 달리 성적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해지는 대학과 사회에 적응하기엔 수능이 끝난 뒤의 겨울방학은 나에겐 턱없이 짧아 보였다.
 
이 부분에서는 지금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남들에 비해 사회생활 면에서 노력을 덜했고, 그래서 사회생활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맞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미래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고3 때 극도로 예민해져서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방어적으로 굴었던 경험이 유일하게 내가 나 자신의 사회성을 의심했던 이유였다. 정신건강만 잘 챙기면 사회생활은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사회에 나가서야 비로소 학교 때는 보이지 않던 '의지의 인간'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절실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에게 그런 '가슴 떨리는 꿈'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아마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죄일 것이다.
p.28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이런 것이었다. 12년간의 학교생활 동안 나는 절실한 꿈이 없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막연히 이공계나 의학 쪽이 적성과 흥미에 맞는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진로를 대강 정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기에, 그리고 대학 입시가 가까워질수록 '성적 맞춰서 대학 가는 것'이 당연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꿈이 없는 것이 당연하고 또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이러한 과거의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사실이 어떻든 꿈을 꾸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고통스러운 암흑기를 겨우 떨쳐내고 이제야 삶에 여유를 되찾은 상태다. 그래서일까. 수험생활이라는 결코 창조적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공부하는 도중 불쑥불쑥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른다. 가고 싶은 장소부터 이루고 싶은 성취, 배우고 싶은 것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대부분이 현재 이룰 수 없는 것들이기에 조금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런 속상함보다는 내가 그럴 때마다 느끼는 생명력이 훨씬 크다. 계속해서 꿈을 꾸는 것은, 당장 이뤄지지 않더라도, '살아있음'을 깨닫게 한다.

나는 내년에 '의지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지금의 생활은 그때를 위한 준비이고 발돋움이다. 스무 살을 맞이하고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기'보다 우선이 되는 목표로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기록하기'를 삼았다.
이 블로그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실제로 이 블로그에 올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독서를 하고 있는데, 다독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증의 심화 및 회복 과정이 다음과 같았다.
현재에 집중(스트레스) -> 과거에 집중(우울증 심화) -> 현재에 집중(치료) -> 미래에 집중(막연한 희망) -> 현재에 집중(회복)
 
4월의 나는 아마 미래에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막연한 희망을 품고 실현이 힘든 것들을 꿈꾸며 현실에서 도피했다. 당장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현실에서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하면서 가까운 미래가 아닌, 먼 미래만을 꿈꿨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다시 현실을 살게 되었다. 정신건강의 회복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순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 변화에 X(구 트위터)의 도움이 있었다. 전에도 계정은 있었으나, 사실상 구독계였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활동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 사용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기존 관심분야 밖의 토픽도 X에서 보기 시작하고, 네이버웹툰 불매운동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현실'의 힘을 느꼈다. 막연한 미래를 꿈꾸고 이미 지나간 과거를 곱씹는 것이 왜 시간 낭비인지, 현실의 역동성을 체험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4월의 내가 꾼 '꿈'은 막연한 희망일 뿐이었다. 꿈 자체의 현실성 보다도, 현재를 열심히 살고 가까운 미래를 계획하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재를 열심히 살 에너지를 되찾은 상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까운 미래에 계획해 놓은 것이 꽤 있다. 꼭 이루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 드는 것들이다. 내가 의지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창한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겠으나 변화가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죄는 없다.


그저 바쁘기만 한 생활이었다면 일찌감치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너무도 선명하고 절대적인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면 할수록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힘이 솟았다.
p.109

 
이 문장은 여러 번 보아도, 볼 때마다 무언가 벅찬 감정이 든다. 마치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는 것과 같이 도파민이 충전되는 느낌이다. 달리기의 연속인 수험생활에서 결승선은 '수능'이다. 그러나, 내 눈앞에는 결승선보다 나의 20대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지금 나의 꿈들은 공부와는 조금 동떨어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대학 합격이 기반이 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 내 목표를 잊지 않고 달린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죄인'에서 '의지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준비기간으로써의 1년간의 수험생활은 길지도 않다. 앞으로 몇 개월 동안 나는 번데기로 웅크려,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겠다!
 
확실히 4월의 나에겐 아직 에너지가 있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마리'처럼 끝까지 달리지 못했다. 7월 즈음 번아웃이 왔고, 버티다가 무너졌다. 겨우 다시 일어섰을 때 수능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가채점 결과는 나쁘지 않지만, 끝까지 달리지 못했기 때문에 죄책감이 남았다. 나는 항상 마지막에 무너졌다. 페이스 조절을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끈기가 부족하고 에너지 소진이 빠른 탓이다. 이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 단기 프로젝트를 끝까지 밀도 있게 수행하는 경험을 먼저 해보려고 한다. 언젠가 장기 프로젝트를 번아웃 없이 잘 완수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내가 알던 그녀는 어제 죽었다.
이로써 나는 '또 다른 오늘'을 얻었고, 인생의 연장전을 이어가게 되었다.
서른 살, 내가 받은 선물은 '생명'이었다.

p.227



수능이 200일밖에 남지 않았다. 나도 그녀처럼 남은 시간을 불태울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마지막에 '새로운 생명'을 선물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위에도 썼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불타다가 꺼졌고, 다시 불을 붙이려고 할 때 끝났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 지금의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은, 그대로의 나 자신도 긍정할 줄 알게 되었다.



하야마 아마리처럼, 그리고 올해의 나처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대표이미지 출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