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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학

책 [에브리데이_데이비드 리바이선_(2)]

by 책읽는오제 2024. 12. 12.
에브리데이(Every Day)

[에브리데이_데이비드 리바이선_(1)]|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에서 한세계(서현진)가 녹음한 책

'에브리데이'는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서현진, 이민기 외)'에서 한세계(서현진)이 녹음한 책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와 책의 소재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녹음 장면에서 나오는 책 내용이 극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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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에서는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와 비교를 중점으로 한 <에브리데이>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이번 글에서는 책 자체의 감상을 써보려고 한다.


 1. 설정이 가져다주는 효과들, 생각할 거리들


매일매일을 다른 사람의 몸에서 산다는 것은 굉장히 독특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저번 편에서 언급한 드라마와 영화 '뷰티 인사이드'와의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도 사실 설정에 있다. 이 소설의 경우는 '모습이 변한다'가 아니라, '빙의를 한다'가 맞는 표현인 것이다.

'빙의'라는 소재가 주는 첫 번째 효과는 서스펜스다. 단순하게 모습이 변한다는 사실도 남에게 들키면 곤란한 점(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에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이지만, 빙의를 한다는 것은 더 큰 위험요소를 동반한다. 이에 따라 A의 존재를 의심하는 존재가 생기고, A와 같은 존재들이 더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A가 떠나는 결말이 나오게 된다. 단순히 로맨스 이상의 갈등 상황을 유발한 것이다.

이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결말이 해피엔딩이기 힘들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끝까지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말을 알게 된 뒤에는 A가 떠나는 결말이 가장 완벽한 결말임을 잘 알 수 있었다. 특별한 로맨스를 다루면서도 A와 같은 존재가 더 있었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 비록 열린 결말로 상상의 여지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하나의 세계가 완결성 있게 표현된 느낌이어서 좋았다.




두 번째로, A가 다른 사람들의 몸속에 들어간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다양한 사람들의 양상을 표현하고 편견 없고 객관적인 자아로서의 A를 서술하는 도구로서 작용했다. 이 소설은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A의 심리를 중심으로 서술함으로써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일면을 보여준다.

한 몸 안에서만 살면 삶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느끼기가 무척 어려워.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에 깊이 뿌리박고 살아가니까. 하지만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이 매일 바뀌면 보편적인 것을 더 많이 접하게 돼. (중략) 만약 사람들에게 월요일과 화요일의 다른 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저녁 식사로 무얼 먹었는지 얘기할 거야. 나는 그렇지 않아. 세상을 아주 다양한 각도에서 보기 때문에 더 많은 면들을 느낄 수 있거든.
'에브리데이' p.141

 
위의 A의 말이 그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A의 시각은 굉장히 객관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편견이 거의 없고, 보편적인 도덕적 잣대를 빼고는 대부분의 이념과 사상에서 대단히 자유롭다. 그래서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A가 가진 관점이 가장 객관적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A가 말하는 것들과 자신의 가치관을 비교하며 자신의 편견을 수정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증 우울증인 켈시의 사례가 그렇다.

정신 질환을 감정 문제로, 성격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몸이 아니라 영혼이 병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잘 안다.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새로운 몸에서 깨어나, 왜 모든 게 언짢고 우중충하게 느껴지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 시절에는 몸의 감정에 접속하지 않았으므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나 자신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러한 성향이, 이러한 충동이 눈동자 색깔이나 목소리만큼이나 몸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느낌 자체는 만질 수도 없고 형체도 없었지만, 느낌의 원인은 화학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이었다.
'에브리데이' p.156

 
설정이 가져다주는 세 번째 효과는 사랑의 다양한 면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A에게 성별 같은 것은 없다. A가 들어가게 되는 대상은 성별이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나이만 일정하게(평범한 사람과 같이) 먹어갔을 뿐, 남녀에 대한 구분은 없었다. 따라서 A는 성 정체성이라는 것이 없다. 이러한 A의 사랑은, 이성애나 동성애를 비롯해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이해하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사랑은 사랑이다. A의 사랑은 그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A와 비교하여 우리의 삶을 성찰함으로써 연속된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A에게는 다가올 미래가 없다. 추억할 과거도 없다. 모든 것은 하루 동안 완결된다. 몸의 주인을 생각하면, 새로운 변화를 만들 수도 없다. 미래를 계획할 수가 없다.


2. 특별한 로맨스


리애넌은 A의 무엇을 사랑했을까? 리애넌이 사랑한 것은 철저하게 A의 내면이었을 것이다. A의 특수한 상황이 주는 호기심과 새로움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런 상황은 나중으로 갈수록 걸림돌로만 작용할 뿐이었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외모만 보는 사랑'이 차라리 순수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상대방의 내면만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적, 물질적인 조건들을 따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세태와 비교한다면 A와 리애넌의 사랑은 비록 소설 속 이야기이긴 하지만 '가장 순수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는 짧은 로맨스에서 느껴지는 단순한 설렘보다도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에 빠진 A의 내면서술이 인상 깊었다.

모든 것이 이 사랑을 향해 달려왔고, 모든 비밀의 화살이 여기를 가리키고, 우주와 시간 자체가 오래전에 그 사랑을 공들여 만들었다고,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우리 심장 속에서, 뼛속에서 느낀다. 그 사실을 바로 지금 깨달았다고, 바로 지금, 우리가 늘 예감해 왔던 운명의 장소에 도착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에브리데이' p.37
사랑은 세상을 다시 쓰고 싶게 만든다. 사랑은 인물을 선택하고 배경을 설정하고 플롯을 짜고 싶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다. 그러면 우리는 능력이 닿는 한 그 사랑이 가능하도록, 영원히 가능하도록, 모든 걸 다 하고 싶다.
'에브리데이' p.227

3. 결말에 대한 감상


자신과 같이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사는 존재가 더 있고, 원한다면 한 사람의 몸을 장기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A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한 몸을 계속 빌리는 것은 살인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되면서 긍정적이고 친절한 '알렉산더'를 리애넌에게 소개해 주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A가 목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직 학생이라 괜찮을지 몰라도 성인이 되었을 때 같은 나이대의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전문으로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몸속에 들어가서 피해를 끼치지 않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수험생의 입장으로 본다면 A가 수능날에 내 몸에 들어온다? 이건 그냥 피해 그 이상의 일이다. 물론 난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점까지 고려한다면 다른 한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사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정당화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차라리 인간 이하의 사람을 택해서 갱생시키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모르겠다. 정말 미래를 예상할 수 없게 만드는 열린 결말인듯싶다.

리애넌은 알렉산더를 좋아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 A의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알렉산더를 소개해 줬다는 사실이 오히려 리애넌에게는 상처로 다가왔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A의 내면을 공유 받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A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내게 오늘 하루는, 삶의 흐름이 바뀌는 날이다. 내게 오늘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지닌 현재가 시작되는 날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달린다.
'에브리데이' p. 414